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펠리페 5세 (문단 편집) == 개요 == [[스페인]] [[보르본 왕조]]의 초대 왕. 1683.12.19 [[베르사유 궁전]]에서 태어났고, 태어나자마자 [[앙주 백작|앙주 공작]]으로 임명되었다. [[프랑스 왕국|프랑스]] 왕세자인 [[그랑 도팽 루이]]와 [[바이에른 선제후국|바이에른]] [[선제후]] [[페르디난트 마리아]]의 딸인 마리아 안나 폰 비텔스바흐[* 루이 14세의 고모인 사보이아 공작부인 크리스틴 마리의 외손녀였다. 즉, 6촌 남매끼리 결혼한 셈.] 사이의 차남으로, [[루이 15세]]의 숙부다. 왕실에 [[천연두]]로 인해 아버지와 형이 모두 죽는 참극이 있었을 때 [[루이 14세]]적손 중 동생인 베리 공작 샤를과 함께 그 참극을 피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베리 공작 샤를은 어이없게도 낙마사고로 사망했다.]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와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2세]]의 이복 누나였던 [[마리아 테레사(스페인)|마리아 테레사]] 왕비의 손자였다. 아버지 [[그랑 도팽 루이]]로부터 [[부르봉 왕가]]의 만족할 줄 모르는 성욕을 물려받았고, 어머니로부터는 [[비텔스바흐 가문]]에서 대대로 나타난 우울증을 물려받았다. 불과 7살 때 어머니인 마리아 안나가 사망했는데 부친인 [[그랑 도팽 루이]]는 아들들을 보살피는데 관심이 없었다. 그로 인해 형제들과 함께 종조모인 오를레앙 공작부인 [[엘리자베트 샤를로테]]의 보살핌을 받았다. 후에 대주교가 되는 프랑수아 페넬롱(François Fénelon)이 그의 가정교사였는데, 페넬롱은 엄격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일탈행동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러한 엄격한 교육으로 인하여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자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